나는 지금까지 내가 탕자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무리 바보같고 한심한 인간이여도 그 부모는 그가 돌아오길 바라며 언제든 반긴다는 그 사실이 감사했다.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좀처럼 나아지지 못하는 나에게 주님의 자비는 한없다는 사실 같아서 감사했다.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LUKE15)
그런데 주님은 내게 탕자가 아닌, 첫째 아들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심술이 많이 난 첫째 아들.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첫째 아들은 동생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첫째 아들과 자신을 동등하게 이야기 한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이미 다 가졌고, 또 앞으로도 그것을 소유한 자들.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주제에 비해 너무 큰 얘기 같아서 황송하기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실제로는 가지거나 누리고 있는게 없는 현실때문에 와닿지가 않는다.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JOB41)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JOHN16)
우리는 아버지의 것을 이미 다 가졌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결핍될 것도, 시기하거나 질투할 것도, 누군가에게 나누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더 많이 가진 자로써, 때로는 억울하거나 정당하지 않는 일에도 참고 인내하고 웃어 넘기는 것까지 우리는 훈련 받는다. 너그러움, 자비, 연민, 베품을 우리는 훈련받는다.
요즘 내 상황이 그렇다. 나는 정말 경제적으로 힘들고, 누구를 위해 에너지와 사랑을 쏟을 여력도 없고,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갈급한 상황인데, 직원에게 월급을 줘야하고, 내가 화나는 상황에서도 위로를 하고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문득문득 화가나고 억울해서 감당하지 못하다가, 그냥 생각을 차단해버린다. 생각을 하면 다 죄된 생각밖에 없어서, 그냥 생각을 안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게 오늘날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력이다.
근데 주님은 내게 원하시는 듯하다. 이제 너도 내 역할을 한번 배워보라고 기회를 주시는 듯하다. 약간의 실력을 올릴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그리고 내게 왜 이런 어려운걸 가르쳐 주실까 싶기도 하다. 나처럼 재능없는 애한테 왜 첫째 아들 배역을 시키실까. 주님의 돌보심이 두렵기도, 영광스럽기도, 제대로된 그리스도의 삶은 두려워서 피하고 싶기도, 언제까지나 챗바퀴 돌리는 삶은 더 싫어서 제대로 잘 배우고 싶기도, 복잡한 마음이 든다.